은퇴는 신기루
은퇴라는 개념은 문제가 아주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람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데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을 때 설계된 것을 전 세계가 다 채택해서 시행하고 있으니 사회경제적 문제가 아주 많이 생깁니다. 하지만 제가 오늘 그런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은퇴 때까지 모든 즐거움을 다 미루고 오직 그 시간을 바라보며 오늘을 묵묵히 인내하며 살아가는 것의 심리적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몇십 년 참고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나중에 은퇴하면 일 하나도 안 하고 돈은 쓰기만 하면서 지내는 그런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은퇴라는 관념 밑에 깔린 생각입니다. 저는 그런 은퇴는 신기루라고 생각합니다. 일 안 하고 돈만 쓰면서 살면 행복할 것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실제 은퇴를 하면 경제적으로 넉넉해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분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도박에 빠지기도 하고요, 갑자기 이혼하기도 하고요, 삶이 끈 떨어진 연처럼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우선 거기서 행복한 은퇴 시기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젊을 때 돈을 엄청나게 벌어서 ‘이제 더 이상 일 안 한다!’ 그러면서 소위 은퇴를, 조기 은퇴를 선언한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요, 그런 사람들이 한 6개월 지나면 다 돌아와서 다시 일하고, 다시 막 창업하고, 생고생을 사서 합니다. 돈만 쓰며 사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면 그럴 리가 없겠죠.
은퇴가 신기루라는 또 다른 이유는 은퇴라는 관념은 사회 지배층이 대중에게 씌워준 노동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은퇴라는 달콤한 시간도 미래에 기다리고 있으니까 지금은 묵묵히 참고 계속 일하라는 겁니다. 실제로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게 삽니다. 어떨지도 모르는 은퇴라는 시기를 막연히 상상하면서 오늘의 괴로움을 참고 견디죠. 그러나 마음은 매일 참 힘듭니다. 이렇게 사는 것을 영어로 delayed gratification이라고 하는데,지금 만족할 수도 있는 것을 미루는 것, 만족을 연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delayed gratification은 제가 전에도 계속 말씀드렸지만 단기간에만 가능한 것이지 장기간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원리입니다. 지금 놀지 않고 내일 있을 시험에 대비해서 공부를 한다면 그게 delayed gratification인데, 그런 만족 연기는 하루, 일주일, 뭐 그런 정도는 통하지요. 하지만 몇 년을 그렇게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습관과 긍정적 피드백 시스템으로 중간중간에 동기가 강화되고 점점 쉬워지는 그런 형태가 아니라면 오직 미래의 만족을 위해 현재를 무한정 계속 희생하며, 의지력을 발휘해서 ‘아니야! 내일로 미뤄, 지금 만족 안 해도 괜찮아…’ 그러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은퇴라는 관념은 여러분 모두 잊어버리시면 좋겠습니다. 대신 은퇴하지 않는 삶을 설계해 보십시오. 첫째로는 은퇴할 필요가 없고 둘째로는 은퇴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삶을 설계해 보십시오. 물론 그게 쉽다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생각도 안 해 보고 거부하지는 마십시오. 그런 삶을 상상해 보고,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분명 길이 있을 것입니다. 단기간에 그런 삶에 도달하지는 못하겠지만 매일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조금씩 노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사람 수명이 매우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더욱 길어질 것으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남들 하는 대로 대충 살다가, 대충 따라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지 마십시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면서 충분히 현재를 누리는 삶, 그런 삶을 산다면 은퇴는 필요 없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꿈꾸는 사람은 그런 삶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아니, 꿈꾸는 사람만이 그런 삶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