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망쳐가는 과정들

어릴 때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면 내성적인 아이는 조용히 앉아서 꼼지락거리며 노는 것을 좋아하겠죠. 그러면 부모는 큰일 난 것처럼 우리 아이 태권도라도 시켜야 하는 것 아냐? 웅변학원이라도 보내야 하는 것 아냐? 합니다. 운동 잘하고 씩씩하고 외향적인 아이는 그만 놀고 집에 와서 책 좀 읽으라고 구박합니다. 물론 요즘 부모님들은 안 그러시길 바랍니다만, 옛날에는 자동반사처럼 아이의 성향에 반대되는 것을 막 주입하려고 했습니다.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첫 단추를 끼우는 겁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가정에서 아이를 망쳤다면,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이제 사회 제도적으로 아이를 망쳐 나갑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국어와 영어는 너무 재미있었는데 수학은 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잘하고 재미있어하는 과목만 공부하면 내신이 엉망이 되고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판이 그렇게 짜여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제 인생의 소중한 2년을 오직 수학만 공부하며 보냈습니다. 암기과목처럼 답을 푸는 과정을 다 외워버렸더니 결국 점수가 나오더군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미적분이 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문제만 풀었지 그게 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려고 해도 힘듭디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제가 그러느라고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2년 동안이나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교과서 외에 읽고 싶은 책이 산더미 같았는데 고등학교 때는 정말 책 읽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 무슨 제도적 폭력입니까? 잘하는 건 억누르고 못 하는 것을 극복하도록 온 사회가 압력을 넣는 겁니다. 이러니 우리 사회에 특출한 사람이 나오겠습니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옵니다. 하지만 요는 이런 분위기가 바뀌고 이런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르네상스처럼 문화와 재능과 경제가 막 폭죽처럼 피어나는 그런 시기는 오기 힘듭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공부하는 학생들, 조직에 속해 일하는 직장인들은 신날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이렇게 안 살면 안 됩니까? 다들 좀 신나게 살면 안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