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부모가 너무 높은 기대를 하고 가르치고 훈계하고 독려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실험의 천재들입니다. 두려움 없이 아무거나 막 합니다. 그것이 아이들이 세상을 만나는 방식입니다. 멀리서 관찰하고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하여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일단 건드려 보고 일단 쑤셔 봅니다. 그러다 난로에 손이 데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기 주변의 세상을 탐색하고 그런 것을 통해 몸과 마음이 자라갑니다. 뭐든지 일단 해보려고 하는 이런 어린아이들의 마음을 영어로는 Why not?이라고 합니다. 아니 안 할 이유가 뭐야? 당연히 해보는 거지. 그게 어린아이들의 기본 상태인 거죠.

그러다 아이들이 점점 강압적 교육에 짓눌리고 주입식 교육에 지쳐 빠지게 되면 그렇게 스스로 이것저것 알아보는 마음이 싹 사라집니다. 이것저것 해보려는 것은 다 쓸데없는 짓으로 규정당하고 하라는 공부만 하라는 핀잔을 계속 듣다 보면, 자기가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자기 스스로 내면화합니다. 이것도 일종의 생존전략이죠.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어쩌다 하고 싶은 것이 불쑥 생각나도 금세 포기해 버립니다. “해 봤자 뭐해, 쓸데없는 짓이라고 혼만 날 텐데,” “해 봤자 뭐해, 어차피 잘하지도 못할 텐데, 끝까지 하지도 못할 텐데,” “해 봤자 뭐해,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을 텐데” 뭐 이런 식이 되지요. 이런 마음을 영어로는 Why bother?라고 합니다. 어릴 때 그 활력이 넘치는 Why not?이라는 태도가 매사 시큰둥한 성인의 Why bother?로 바뀌는 거지요. 이건 개인의 비극이기도 하고 사회의 비극이고 인류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태어날 때 다 천재였던 아이들이, 모두 하라는 것만 하고 가라는 길로만 가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실험과 모험은 시도도 해보지 않으려 하는 범생이들로 바뀌어버렸으니까요.

뭐 여기서 다시 사회 탓, 부모 탓하지 맙시다. 우리가 그런 상태가 되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그걸 바꾸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라도 아이들은 그렇게 안 키우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부터라도 어린아이의 끝없는 호기심과 왕성한 실험정신을 회복합시다.

늘 가던 길로만 가지 말고 다른 길로도 다녀봅시다. 늘 하던 일을 늘 하던 방식으로 하지 말고 다른 일도 해 보고 같은 일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해 봅시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지? 아니 이건 왜 늘 이런 식으로 해야 하지? 내가 저런 일을 해볼 수는 없을까? 뭐 그런 생각을 매일 매 순간 하며 사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주변에서 핀잔도 듣고 또라이 취급도 당할 수 있지만 어느새 창조적인 사람이라고, 아이디어맨이라고, 신선한 발상의 원천이라고 칭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시속 5킬로미터로 가던 내 커리어가 시속 100킬로미터로 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전혀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실험정신을 가진 어른은 다시 자라기 시작합니다.